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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재개발 허브' 발돋음 위해 직제개편 단행

“국가인재원이 명실공히 국가의 핵심인재를 양성하는 대한민국 공무원교육의 중추기관으로서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공무원을 양성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공무원의 산실이 되도록 노력”


국가인재원 보람관 전경

올해 초 출범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원장 옥동석)은 국가인재개발 허브 기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인재개발을 위해 교육 R&D 및 국내외 교류협력 기능확대 등 관련 법률의 취지에 맞추어 관련 부서 신설 및 교육운영 부서간 기능조정 등의 개편을 실시한 것이다.

「연구개발센터」 신설 등 큰 변화

이번 개편으로 본원에는 「연구개발센터」(국장급)가 신설됐다.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조직과 인력을 보강해 시대 변화에 맞는 국가공무원 인재상을 정립하고, 표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거나 교육평가 체계의 정립과 확산 등 교육 R&D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신설된 「연구개발센터」는 과학적‧체계적 연구를 통해 공직가치 체계화, 공공부문에 특화된 인재개발(HRD) 전략 연구, 교육과정 개발, 선진화된 평가기준 마련 등 공무원 역량 개발의 질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센터는 표준화된 공직가치‧리더십, 역량개발 등 교육프로그램‧기법‧교재 등을 각급 공무원교육훈련기관(국가 32개, 시도 16개, 시도교육청 16개)에 보급하고 교육운영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추진해 공공부문 인재개발을 선도할 토대를 구축하게 된다.

내실 위한 기반 마련에 중점

또한 연구개발센터의 신설과 함께 중요성이 높아지는 글로벌교육 분야의 기능을 감안하여 글로벌 공공HRD의 구심점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국제교육협력관」(국장급)을 「글로벌교육부」로 변경하고, 소속 부서에 글로벌교육과를 신설했으며, 그 결과 경쟁이 심화되는 글로벌 환경에서 국내공무원의 국제협상‧외국어 능력 및 글로벌 마인드 등 글로벌 역량을 높이고, 글로벌 리더 그룹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게 외국공무원교육, 글로벌 공공 HRD 컨설팅 및 교류협력사업의 내실을 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한편 교육훈련의 주요 패러다임 변화, 인재개발법 개정 사항 등을 반영해 직급별 기본교육, 직무전문교육 등을 담당하는 「교수부」(국장급)의 명칭을 「리더십개발부」로 변경하고, 교육운영의 효율성 및 전문성 확보를 위해 하부 부서간 기능도 조정했다.

특히, 부서별로 교육대상(신규자, 관리자)‧목적(기본교육, 전문역량교육)‧방법(집합교육, 이러닝) 등에 따라 교육운영 기능을 조정하고, 부서 기능에 맞게 명칭도 바꿨다. 따라서 교육총괄과, 정책교육과, 전문교육과, 스마트교육과 등이 각각 신규자교육과, 관리자교육과, 전문역량교육과, 스마트교육과로 개편됐다.

‘인재개발’, ‘연구개발’, ‘교류협력’의 3대 축 마련

옥동석 원장은 “이번 조직개편으로 국가인재원이 단순한 ‘교육 운영’의 수준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교육 연구, 개발 및 평가 시스템을 갖추고, 글로벌 교육‧교류협력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인재개발’, ‘연구개발’ 및 ‘교류협력’의 3대 축을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교직원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러한 기반을 발판 삼아, 올해 9월 말 국가인재원의 충북 진천 혁신도시로 이전을 앞둔 대내외적 여건 변화에 적극 대응을 당부하는 한편, “국가인재원이 명실공히 국가의 핵심인재를 양성하는 대한민국 공무원교육의 중추기관으로서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공무원을 양성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공무원의 산실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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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진천캠퍼스(본원) 이전

― 진천시대 개막 ―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원장 옥동석) 본원이 오는 9월 말 진천에 위치한 교육ㆍ연구 클러스터인 ‘충북혁신도시’에 새둥지를 틀고 진천시대의 서막을 연다.


국립공무원훈련원 출범(서울 경운동, 1949)

‘국가인재원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인 1949년, ‘국립공무원훈련원’으로 출범했다. 시대 상황에 부합하는 국가공무원 양성을 위해 ‘중앙공무원교육원(1961)’으로 확대 개편 후 대전과 30여 년의 과천시대를 거쳐, 2016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새롭게 출범하여 지난 67년간 국가공무원의 교육·훈련을 전담해온 공무원교육의 메카로서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중앙공무원교육원 (과천청사 개원식 1981)

과천분원의 약1.5배

진천캠퍼스는 2011년 7월 국토해양부로부터 지방이전계획을 승인받아 부지 매입과 설계를 완료하여 2014년 6월 착공하여 2016년 8월 준공했다.

청사는 대한민국 국가공무원 양성의 산실인 ‘국가인재원’이 빛과 같이 뻗어나가는 형상을 컨셉트로 지어졌다.

전체 시설은 대지 13만 3,000㎡에 교육․업무시설, 대강당동, 후생시설, 기숙사 등 5개동(지하1층~지상6층)에 연면적 3만 2,306㎡(과천분원 2만 1,520㎡) 규모로 과천분원의 약1.5배에 달한다.

강의장은 소규모‧토론식의 문제해결형(Problem Based Learning)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16개의 중‧소형 강의실과 38개의 분임실을 갖추고 있으며, 약 4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형강의장(2실)도 갖추었다.


공직가치 지주석

역사홍보관

특색 있는 외부조형물로 입구에 국가와 국민에 헌신ㆍ봉사하는 공직자의 가치실현을 나타내는 지주석(국가관·공직관·윤리관)을 설치했으며, 광장에는 교육실천을 통한 공직자의 본분을 새기는 의미로 대전청사 건립(1974) 당시 조성했던 “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와 “애국애족의 산 교육실천” 휘호석을 설치했다. 또한 대한민국 발전 70년과 함께한 인재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홍보관’도 마련했다.

진천-과천캠퍼스 이원체제 운영

진천으로 본원이 이전함에 따라 진천-과천캠퍼스를 동시 운영하는 이원체제가 된다. 교육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진천 본원은 5급 이상 관리자 중심의 기본ㆍ역량교육, 교육R&D에 주력하여 공무원 인재개발의 허브로, 과천분원은 국제교류협력, 외국공무원교육 등 글로벌리더 양성센터로 기능을 배분하여 운영된다.

옥동석 국가인재원장은 진천 이전을 계기로 “앞으로 국가인재원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무원 양성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맞이 마당 앞 휘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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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인사청장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방문

한-터키 간 공무원 인사관리 분야 교류협력 확대를 위해 쿰부즈오글루(Kumbuzoglu) 터키 인사청장이 지난 7월 14일 한국을 방문하여 인사혁신처와 터키 인사청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또한 쿰부즈오글루 인사청장은 7월 15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NHI)을 방문하여 옥동석 NHI 원장과 공공 인적자원개발 분야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터키 인사청장은 한국과 달리 터키는 공무원 채용·배치 등 인사관리 시스템이 분권화되어 있어, 터키 인사청의 역할과 인사 운영·관리 시스템의 강화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양해각서 체결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불과 50년 만에 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공무원의 역할과 교육의 힘이 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었다면서,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교육훈련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 원의 원격교육센터 방문 시, 이러닝·원격교육 및 운영 시스템에 큰 관심을 나타냈으며, 향후 이 부분에 대한 협력을 요청했다.

한편, NHI가 매년 개최하는 HR 리더스 포럼에 터키 인사청의 조직·관리개발과장을 초대해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이를 계기로 양 국가 간 공공 HRD 시스템에 대한 상호 이해의 폭이 커지기를 희망했다.

그간 다양한 분야에서의 한-터키 간 협력 관계에 비해 인사·교육훈련 분야는 상대적으로 미흡했으나, 터키 인사청장의 방한을 계기로 향후 동 분야 교류협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 기관장·터키 인사청장 면담 사진 >

< 원격교육훈련 견학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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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명의 신임사무관, 오늘부터 뛴다

― 제61기 신임관리자 공채과정 사무관시보 임명장 수여식 개최 ―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합격자 363명이 16주 동안의 임용 전 교육을 마치고, 신임사무관으로 임용되어 정책현장으로 나아간다.


신임관리자 공채과정 사무관시보 수료식

「知」:업무에 대한 전문적 능력, 「德」: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따뜻한 마음, 「體」: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발로 뛰는 행정.

대한민국의 행복이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도록 智德體 이 세 가지를 고루 갖춘 유능하고 따뜻한 공무원이 되겠습니다.

- 김형은 교육생 공직다짐 내용 중

인사혁신처는 19일 제61기 신임관리자 공채과정 교육생 363명을 대상으로 사무관 시보 임명장 수여식을 개최하였다.

이날 임명장 수여식은 지난 16주간의 교육을 뒤돌아본 후 임명장 수여, 공무원 선서, 신임사무관으로서의 다짐, 인사혁신처장 축사 등으로 진행됐으며, 공무원 채용후보자로서 이수해야 하는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것을 치하하고, 대한민국의 정책을 수립ㆍ집행하는 사무관으로 시보 임용되는 의미를 새기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올해 신임관리자 교육과정에서는 사상 최초로 입교 직후 3주 동안 공직가치 내재화 합숙교육을 실시했다. 5급 공채 출신 선배공무원 22명이 합숙을 같이 하면서 교육생을 이끌어 준 ‘지도직원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운영하고, 합숙교육 이후에는 사회봉사활동, 통일안보현장 체험과 함께 일과 후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공직가치를 자율적으로 실천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등, 신임사무관에게 요구되는 공직가치 내재화 교육이 강화됐다.


신임관리자과정 공채과정 사무관 교육현장

돌덩이가 예전에는 쓸모없는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원으로 활용되잖아요. 마찬가지로 지금 언뜻 보기에는 영양가 없어 보이는 분야나 산업들도 얼마든지 미래의 유망한 먹거리 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맡은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고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공무원이 되겠습니다.

- 강현희 교육생 공직다짐 내용 중

올해 교육은 다양한 참여ㆍ토론형 교육을 확대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정책기획 및 실무역량 등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킴으로써 ‘올바른 공직가치관과 미래에 대비한 정책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실전형 역량을 쌓는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되었다.

각 부처에서 추천한 현안 과제에 대한 소규모 팀 단위 정책기획 실습, SW(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기술과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을 접목한 문제해결 학습 등의 참여·토론형 교육을 대폭 확대했으며, 자기주도 학습의 일환으로 개인별 자기개발계획을 수립ㆍ실행하고, 미래정책 아젠다 연구대회, 정책담론 토론회 등 분임단위로 주제를 정해 자율적으로 연구·학습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또한, 교육평가를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는 한편, 엄정한 교육기강 아래 교육생들이 스스로 교육생활 수칙(Dos&Don‘ts)을 정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준수하는 등 자율적․열정적인 교육 분위기가 조성되어 교육효과와 학습몰입도가 이전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

한편, 이날 임명장 수여식 이후 시보 공무원으로 임용되는 363명의 신임사무관들은 앞으로 13주 동안 정책현장(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실무수습을 하고, 다시 국가인재원으로 돌아와 역량강화 교육을 받은 후 배치된 소속기관에서 내년 1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옥동석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은 “그 어느 교육과정보다 힘든 교육 일정을 훌륭히 소화하고 오늘 신임사무관으로 임용되는 여러분들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여기에서 배운 전문지식과 역량, 자긍심을 바탕으로 실무수습 현장에서도 국민들의 삶의 문제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동극 인사혁신처장은 축사를 통해 “앞으로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올바른 공직자세를 유지하면서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수행해 줄 것”을 주문하면서 더불어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363명의 신임사무관 모두가 맡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공무원으로 성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NHI News

한국행정연구원과 간담회 개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옥동석 원장)에서는 8월 3일 국가정책ㆍ행정연구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행정연구원(정윤수 원장)과 실질적 협력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양 기관의 참석자들이 함께 모였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행정연구원의 정책ㆍ사회통합, 평가연구, 국정부문ㆍ규제비용평가, 사회조사 및 국제행정협력 등의 정책과제 수행 노하우를 공무원교육에 접목시켜 실질적 성과향상에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특히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혁 성과창출 및 적극행정 마인드 확산을 위한 교육콘텐츠 개발, 이에 적합한 강사지원과 공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핵심가치인 공직가치 교육프로그램 개발, 직급별 역량체계 구축 및 관리자 리더십 향상을 위한 사례연구ㆍ모의과제 도출, 퍼실리테이팅 매뉴얼 개발 등 교육과정 개발ㆍ지원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로, 주요 국정과제의 성공적 추진과 공무원 역량 강화를 위해 행정연구원에서 수행한 각종 정책연구를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한편, 앞으로 양 기관은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연구와 교육의 성과창출을 위해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NHI Inside

공직자의 말과 글, 어떻게 준비할까?

― 김철휘(국무총리 연설비서관) ―

글의 내용은 주제와 연관되어 아주 구체적이어야 한다. 정책, 통계 등을 인용하여 연설의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숫자를 여러 종류 나열하는 것보다 비례 등을 사용하여 간략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평소에 말을 잘하는 사람도 대중 앞에 서면 버벅거리게 된다. 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아나운서건, 교사건, 남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머뭇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은 우리가 공통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이루고 살고 있는 우리들은 늘 말이란 유창하게 해야 하는 것, 혹은 재미있게 말해야 한다는 편견, 혹은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말’에 대한 편견 버려야

그러나 공식석상에서 하는 말들은 대중을 흥분시키는 선동이 아니다. 대중을 상대로 말을 할 때는 늘 사실(fact)을 말해야 하며, 무엇인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특히 공직자들에게 말이란, 팩트를 통한 정보전달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공식적인 말은 놀이가 아니라 일의 한 부분이다.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임기응변으로 넘길 만한 것이 아니라 말 자체의 내용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재미있어야 할 것도 아니다.

공직자로서 말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공적인 말과 사적인 말을 구분해야 한다. 듣는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적인 경험을 섞어 넣는 경우도 있는데, 가급적 이런 것도 자제해야 한다.

또한 말을 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 이때에도, 자기 자신의 선입견을 앞에 내세우고 남의 말을 듣는 것은 옳지 않다. 내 의견과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불편부당한 위치에서 객관적으로 경청하고, 그 말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그 다음 내 생각을 정리해서 말을 해야 한다.

대체로 일반인들의 말하는 태도와 유사하지만, 공직자라면 특히 위의 두 가지 사항, 공사구분과, 경청이 더 중요하다.

또한 많은 말로 대중을 설득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말을 하는 것은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 아니다. 말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일어야 하는 고도의 협상수단 중 하나가 바로 공직자의 말이다. 게임은 경쟁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고, 공직자의 말은 상대방(청중)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을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멋있는 말보다 진실한 말

흔히 말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는 말을 많이 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말을 잘하기 위해 일부러 멋있는 말을 만들려고 하다가는 더 큰 낭패를 부를 수 있다.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전하는 것이다. 멋있는 말, 특별한 말을 꾸며 내어 말하는 것보다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말은 기록으로 완성된다. 따라서 공식적인 말(연설)이라면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

연설문은 많은 사람을 앞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기 전에 미리 작성해 놓은 글이다. 연설을 할 때에는 자신의 생각 또는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경향이 크다. 따라서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연설을 하기 위해서는 연설문을 미리 써 놓는 것이 좋다.

연설문을 작성하기 전에 그 상황과 분위기를 정확히 파악을 하고 작성하도록 한다. 또한 청중에게 어떠한 목적으로 이 연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아주 상세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연설문을 쓰는 방법

이제부터 연설문을 쓰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연설문을 쓰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연설의 주제를 생각하는 일이다. 연설문은 목적달성이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에 목적에 맞는 연설 주제를 생각하도록 한다.

주제가 정해졌으면, 그 주제의 바탕이 되어줄 자료들을 수집해야 한다. 그리고 수집된 자료들을 언제 어떻게 적재적소에 넣을 지에 대해 결정한 후 개요를 작성해야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연설을 하는 사람의 수준이 아니라, 연설을 듣는 청중들의 수준을 고려해서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제와 자료들이 준비되었다면 이제부터는 연설의 틀을 짜야 한다. 대개 연설에는 주어진 시간이 있다. 이 시간 안에 연설자가 전달하려는 내용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보통사람들은 1분에 360자 정도를 말한다고 한다. 이 분량을 기준으로, 연설할 장소와 모이는 사람들의 수, 전달 방법(마이크와 스피커의 규모, 수량 등)을 미리 파악하고 말(연설)할 분량을 정한다.

연설문의 구성, 효과적 전달을 생각해야

주제가 정해지고, 자료들이 준비되고, 연설을 할 시간까지 정해졌다면, 이제는 연설의 구성을 생각해야 한다.

대게, 연설문도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게 되는데, 연설의 도입부에서는 연설을 하는 장소나, 청중들의 성격에 따라 인사를 하는 내용으로 채우는 것이 좋다. 시상식이라면 치사의 의미가, 추도식이라면 애도의 의미가 담기되, 인사 부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도록 하자.

연설문 작성의 유의사항·1

  • · 예정된 시간에 맞는 분량인가?
  • ·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게 정리되었는가?
  • · 구성은 적절하게 이루어졌는가?
  • · 고유명사, 통계수치는 한번 더 확인했는가?
  • · 내용에 중복되는 부분은 없는가?
  • · 연설문 작성 후 변동된 사항은 없는가?
  • · 외래어 표기 등 맞춤법에 오류는 없는가?
  • · 보도자료 등 후속조치에 대한 준비는 되었는가?

그 다음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를 두어 개 정도로 잘라서 너무 많지 않은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은 연설의 마무리로서, 핵심 주제를 정리하여 강조하면서 끝내도록 한다.

연설문을 쓸 때는 무엇보다 쉽고 편안하게 써야 한다. 듣는 청중들이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하려면 연설문을 쓰는 사람 자신부터 쓰는 일에 긴장하거나 부담감을 가져서는 안된다. 위에서 말한 주제와 자료 준비가 충실히 되어 있다면, 연설문을 작성하는 사람도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작성할 수가 있다.

연설문은 시나 수필이 아니다. 따라서 형용사나 부사 등의 수식어에 발목을 잡히지 말아야 한다. 글을 아름답게 쓰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또한 문장 자체가 짧을수록 좋다. 주어와 서술어는 되도록 가까이 붙여서 써야 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들도 이해가 빠르다.

글의 내용은 주제와 연관되어 아주 구체적이어야 한다. 정책, 통계 등을 인용하여 연설의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숫자를 여러 종류 나열하는 것보다 비례 등을 사용하여 간략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연설문의 목적은 청중의 공감

연설문의 최종 목적은 연설 대상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이 가장 호소력이 있다. 유사한 연설문을 참고하고,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는 것이 좋다. 이때 처음에 예기했듯이 공적인 연설과 사적인 대화를 구분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 구분이 잘못되어 언론의 비난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설은 글과 달리 현장의 분위기가 무척 중요하다. 행사장에 미리 도착하여, 그 분위기를 파악해 보고 현장의 특징을 잡아내어 미리 준비한 연설문에 삽입하도록 한다. 한 공간에 같이하고 있는 청중들은 그 당시의 의미를 통해 공감의 속도와 정도를 달리하게 마련이다.

연설문 작성의 유의사항·2

  • · 공직자는 자기 주장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 · 생중계할 경우, 시청자들을 고려해야 한다.
  • · 남의 글을 인용할 경우, 반드시 출처를 밝힌다.
  • · 앞서 말하는 사람의 연설문과 중복을 피한다.
  • · 날씨, 주가 등 유동적인 내용은 주의한다.
  • · 약어나 전문용어는 가급적 피한다.
  • · 전문가를 대상으로 할 때는 일반론을 생략한다.
  • ·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 때는 통역을 감안한다.

천하의 명문을 욕심내면 안된다. 욕심은 금물이다. 명연설은 명문장이 아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인용이나 조크를 절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속담 등을 인용하는 것도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 식상한 느낌을 주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공식 석상에서의 조크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또한 연설의 마무리는 청중의 예상보다 빨라야 한다. 짧고 강하게 끊어야 여운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진심보다 더 큰 무기는 없다. 눈높이를 청중에게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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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글로벌매너·이문화과정 개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는 7.11.~ 7.15.까지 1주일간 국제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 18명을 대상으로 「2016년도 글로벌매너‧이문화과정」을 운영했다.


글로벌 테이블 매너 및 에티켓 실습 장면

본 과정은 효율적인 국제업무 수행을 위해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열린 사고 및 매너 배양과 이문화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교육수요를 반영, 기존 과정 내에 일부 교과목으로 운영하던 것을 콘텐츠를 보완하고 전문성을 강화하여 독립과정으로 신설하였다.

실습과 체험 중심으로 운영된 본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은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 및 의전, 실제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운영한 테이블 매너·에티켓, 역할극을 활용한 글로벌 이미지메이킹 등 글로벌 기본소양을 체험함은 물론 중국, 동남아, 이슬람 문화 등 지역별 문화를 이해하고 국제적인 안목을 키우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본 과정을 수료한 통계청 국제협력담당관실 최종희 사무관은 “다양한 실습과 체험 중심의 교육이 매우 좋았고, 특히 이슬람 문화 등 타 문화의 이해를 통해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이란, UAE, 말레이시아 등 국가와의 업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수료 소감을 남겼다.

국가인재원은 본 과정이 국제교류․협력, 통상․협상, 해외파견, 국제회의 참가 등 국제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필수과정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완‧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지역별 문화의 이해 – 중국편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대상자들

글로벌 이미지메이킹 실습을 하고 있는 참석자들

2016년도 글로벌매너·이문화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참석자들

NHI Inside

문화가 이끄는 행복한 대한민국

― 제2기 문화융성과정 열려 ―


국립국악원에서 참석자들이 사물놀이 체험을 하고 있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는 지난 7. 20. ~ 7. 22.까지 중앙부처·지자체 및 공공기관 재직자들을 대상으로 「제2기 문화융성과정」을 운영했다. 본 교육과정은 문화융성 국정기조의 실현 및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업하여 기획·운영한 것으로, 지난 4월 1기(4. 6. ~ 4. 8.)에 이어 두 번째 운영되었고 총 60명의 교육생이 참여했다.

국립국악원에서 참석자들이 사물놀이 체험을 하고 있다.

이번 과정은 문화융성 정책에 대해 이해하고 관련 전문지식을 함양하여 문화융성 실천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도록 강의, 체험, 토론 등 다양한 학습유형을 조합하여 모듈을 구성했다.

‘공감’과 현장적용 위한 교육


국립국악원에서 참석자들이 사물놀이 체험을 하고 있다.

먼저 ‘문화융성 이해’ 모듈로, 문화융성의 의미와 문화융성 정책 방향에 대해 이해하여 본 과정의 취지에 교육생들이 공감하고 교육 기간 중 학습한 내용의 현업 적용방안을 고민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전문지식 함양’ 모듈에는 문화가 이끄는 창조경제, 한류와 포스트 한류, 문화로 살리는 지역과 공동체, 문화예술교육 등 문화융성 정책과 사례를 중심으로 문화적 접근방식을 이해하고 관련 지식을 함양할 수 있는 알찬 내용이었다.

‘실천역량 제고’ 모듈에서는 문화예술체험을 통해 교육과정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토론·발표 시간을 통해 업무현장에서 실천해볼 수 있는 문화융성 국정과제 실천방안을 고민하여 분임별로 토의·발표를 하는 과정으로 짜여졌다.

특히 국립국악원에서 진행한 문화예술체험은 서민음악인 사물놀이부터 궁중음악인 편락, 평롱, 우조시조 등을 가까이에서 관람하고, 사물놀이 악기를 직접 배워봄으로써 교육생들의 열띤 호응과 높은 만족을 이끌어냈다.

더 내실 있는 교육 진행

이번 교육과정에 참여한 교육생들은 본 과정이 정책실현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습득 및 체험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정책활성화·창조적 분위기 형성 등 전반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국가인재원은 앞으로도 재직공무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문화융성 정책 기조 실현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문화융성과정」을 더욱 내실있게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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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가치 교육,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 글 김태규 ―

공직가치 교수요원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우리나라의 행정요소는 공무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은 때로는 가정에 소홀해지는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맡은 역할에 충실하고 이러한 공무원들의 자부심과 소명감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묵묵히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공무원들이 있는 반면에 일부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공무원이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공직자들의 모습을 접한 국민들은 공무원사회에 적지 않은 실망감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에 공무원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공직가치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공직가치는 ‘공직’과 ‘가치’가 더해진 표현이다.

혹독(?)한 추위와 교안작성의 촉박 등으로 공직가치 전문교수요원 양성 교육을 어렵사리 마쳤다.

수료식장에서 인증서를 받으며 대한민국 공직자들에 대한 가치전도사로서의 다짐도 했다. ‘대다수의 공직자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전달할까?’라는 것이 우리들의 최대 과제였다.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나는 이론교육에 치중하기보다는 각 분야의 사례들을 동영상과 함께 소개하며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에 핵심 키워드를 짧고 강하게 제시함으로써 공직가치에 대한 단초를 제공토록 함이 좋은 결과를 낼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정해진 일정에 의해 ‘공직가치’를 교육하는 자리에 섰다. 생각했던 대로 가급적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게 내용을 전달하려 노력했다. 결과가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 하면 되겠구나. 강의기법을 더욱 세련되게 하고.’

그러나 다른 교육과정에서 받은 느낌은 또 달랐다. 교육대상자들의 집중도도 떨어지고 참여 열의도 높지 않았다. 내 나름의 강의기법을 발휘함으로써 교육을 마치기는 했으나 아쉬움이 많았다. 공직가치에 대한 강의요령 부족이었을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무척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강의 일정이 짧아 강의기법의 완숙이나 공직자들에게 가치개념을 전달하고픈 의욕 등이 중단되는 느낌도 받았다. 하나라도 더 전달할 수 있었던 내용들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공직가치는 무엇보다도 국민이 정부에 대해 갖게 되는 신뢰감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민이 언론을 통해 비슷한 사건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다수의 공무원들이 비리에 연루된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부정과 부패가 결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형성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공직자에 대한 공직가치 교육을 도입토록 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공직가치 교육에 대한 열기는 지지부진한 느낌을 갖는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서일까?

사람에 대한 가치교육의 효과는 기계처럼 투입과 산출의 명확한 관계로 나타낼 수 없다.

이미 사회화가 많이 이루어진 개인이라도 지속적인 자극을 통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단초를 마련해 준다면 중장기적으로 스스로 개인의 가치를 형성하고 변화시켜나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제언해 본다.

우선 모든 공직자에 대한 공직가치 교육을 의무적 필수교육으로 지정, 교육점수를 이수토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꾸준히 가치교육을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공직자들의 마음 또한 서서히 바뀌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첫술에 배부르겠는가? 멈추지 않고 지속되어야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 본다. 이와 같은 논리는 내가 도입한 일이 아니라고 무시되지 않아야 함과 같다.

‘공직가치, 더욱 잘 전달하겠습니다.’라는 수료식에서의 화두가 머리를 때린다. 하고자 하나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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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공직가치

― 글 임덕수 ―

공직가치 교수요원


청사 준공 후 이 소나무를 여러 번 옮겨 심어 봐도 자꾸 고사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옮긴 곳이 바로 현재의 자리이며 소나무는 비로소 고고한 자태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요즘 김영란법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정식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공무원뿐만 아니라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까지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왜, 무엇 때문일까. 돈과 관련되는 부정과 부패 등의 문제가 사회 각 분야로 퍼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숭례문 화재사건”으로 공직 자세 반성

올해 96세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은 말한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돈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 좋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한다고 잘라 말한다. 즉, 정의, 진리 등의 정신적 가치가 물질, 권력, 명예 같은 가치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지난 1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주관의 “공직가치 핵심강사” 과정에 참여했다. 각 부서의 은퇴 공직자가 후배 공직자들에게 재직 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사례 중심의 국가관, 공직관, 윤리관 등의 교육에 대한 강사로 나서 공직자의 가치를 변화시켜 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공직가치란 정의, 진리 등의 높은 정신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공공기관의 목적과 역할, 공무를 통해 갖는 의미 등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면서 성실히 근무하고자 하는 동기로 요약 정리해 볼 수 있다.

공직가치 변화와 관련해 내게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라는 문학작품이다. 공직자인 주인공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근무하다가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공직 자세 등의 가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태도 등에 변화를 가져왔다.

또 하나는 2008년도 2월에 발생한 “숭례문 화재사건”이다. 화재장면은 TV로 생중계되었다. 화재현장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며 울부짖는 시민들의 통곡, 수백 년 지켜온 국보 제1호를 지켜내지 못한 자괴감 등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나에겐 숭례문 화재는 재직 부서의 사건으로 반성적 의미에서 공직자의 자세 등 공직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강사과정 수료 후 “공직가치” 강의 교수안을 이렇게 구성했다. 첫째는 내가 읽은 “아버지” 문학작품 사례를 들어 공직자 개개인의 내재적 가치변화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둘째는 숭례문 화재사례를 들어 공직자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공직가치의 기대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중점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전반기에 국세공무원교육원, 우정공무원교육원, 중앙교육연수원 등 여러 기관에서 공직가치에 대한 강의를 했다. 다행히 강의를 들으신 분들의 반응이 좋았다. 아마, 공직자 분들이 숭례문 등 우리의 문화유산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더 호감이 갔던 모양이다.

선비송처럼 굳고 정결하게

지난 4월, 과천에 있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공직가치”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 보니, 잘생긴 소나무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름이 “선비 송(松)”이다. 순간, 강의 중에 “선비는 혼자 걸어가도 제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을(獨行不愧影) 정도의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후배 공직자들에게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쳤다.

선비송의 유래는 이러했다.

“이 소나무는 1980년 교육원의 과천부지 조성 당시부터 있었던 소나무이다. 청사 준공 후 이 소나무를 여러 번 옮겨 심어 봐도 자꾸 고사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옮긴 곳이 바로 현재의 자리이며 소나무는 비로소 고고한 자태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지 조성 당시 작업을 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바로 이곳이 애초 소나무가 자라던 그 위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나무의 정절을 높이 기려 선비송이라 이름 하였다는 것이다.

유래를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저 선비 소나무야말로 우리 사회가 바라는 공직자에 대한 기대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 공직자가 처한 상황은 참으로 어렵다. 게다가 공직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 맞춰 공직가치도 높여져야 한다. 어렵지만 우리 모든 공직자가 저런 소나무의 선비정신으로 굳고 정결하게 공직자의 역할과 책임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인물열전 / 동양편

군주의 기대와 백성의 신망을 한몸에

― 글/사진 함성주(시인, 칼럼니스트) ―

오리 이원익(李元翼, 1547. 명종2 ~ 1634. 인조12)이 살았던 시기는 나라 안팎으로 심각한 격변에 휘말린 시대였다. 사색당파가 횡행하던 조선시대, 일국의 재상으로서 그 어지러운 난세를 헤쳐 나간 그의 리더십은 남과 북으로, 동과 서로 갈라진 요즘, 계층 간의 갈등이 극심한 오늘날에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오리 이원익의 초상

이원익은 왕손이다. 1547년 태종의 아들 익령군의 4세손으로 태어난 그는 임금의 종척 4대까지는 벼슬에 나갈 수 없다는 당시의 국법 때문에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그가 훗날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정치를 하고, 말뿐인 행정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써 백성들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백성들과 함께 걸어온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반 백성과 동고동락하다

그는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한 경세가였다. 1569년 과거에 급제한 이후 선조·광해·인조 3대에 걸쳐 거의 한 세기에 걸친 60여 년의 관직 생활을 했으니,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원익은 그 자신이 동인으로, 또 남인으로 당파에 속해 있긴 했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부패한 관료들의 시기와 중상모략이나 당색에 개의치 않고 항상 현장에 달려가 문제를 명쾌히 해결해 내곤 했다.

따라서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이래로는 백성으로부터 부모와 같은 존경을 받아 삶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용서와 화해, 설득과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 반대 당파의 공직자들조차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최고의 청백리

흔히 조선의 3대 청백리를 꼽을 때, 황희, 맹사성, 그리고 오리 이원익을 꼽는다. 자신은 두어 칸의 소박한 집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살면서도, 나라를 든든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백성을 편안하고 잘 살게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제도개혁에 힘썼으며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원익은 1569년(선조 2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사람 사귀고 어울리기를 싫어하여 공적인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았으므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서애 유성룡과 한강 정구, 율곡 이이만이 그의 인품을 알아보고, 존경을 보냈다 한다. 1573년에 하사(賀使) 권덕여를 따라 명나라에 다녀온 이듬해 예조랑(禮曹郞)에서 뽑혀 황해 도사가 되어 비로소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직책을 역임하던 중, 1573년(선조 6년) 명나라에 파견되는 사절의 일행으로 북경에 갔다가 그의 글재주를 시험해본 명나라 관리들 앞에서 유창한 서예 솜씨와 글재주, 시 솜씨를 드러내 이름을 떨치고 돌아왔다.

율곡 이이가 황해도 감사로 있을 때, 그의 밑에서 일을 잘 처리한 이원익은 이이의 천거로 주요 관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1583년(선조 20년) 안주목사로 부임하면서는 양곡 1만 여석으로 배고픈 백성들을 구휼하기도 했다. 1583년에는 승지가 되었으나, 반대 당파의 상소 때문에 파면되기도 했다.

여느 관리들처럼 그도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빼어난 성품과 불편부당한 업무처리로 나날이 신망이 높아진 그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전대미문의 국난을 맞아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온몸을 바치게 된다.

국난 극복의 선봉에 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조판서로 평안도 도순찰사를 겸임하여 왕의 피난길에 앞장섰으며 흩어진 군사를 모아 적과 싸웠다. 이듬해 평양 탈환작전에 공을 세워 영의정이 되었으나, 일본과 화의를 주장한 죄로 물러난 유성룡을 변호하다가 그만 이원익도 벼슬에서 물러났다. 벼슬길에서 물러난 그는 1600년에 다시 부름을 받아, 이항복의 뒤를 이어 좌의정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평양성 전투도

이원익은 사람을 잘 볼 줄 알았다. 어느날 미수 허목이 찾아왔는데, 이원익은 그의 비범함을 한눈에 알아봤다.


허목 초상

허목(許穆, 1595~1682)은 송시열과 예학(禮學)에 대해 논쟁을 벌일 만큼 빼어난 학자였다. 남인의 핵심이었고, 남인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갈라졌을 때는 청남의 영수로서, 조선 후기 정계와 사상계를 이끌어간 인물이다.

조선 후기 강성 정치인의 면모를 뚜렷이 갖추었으면서도 개성 있는 학문 세계를 추구한 허목의 됨됨이를 알아본 이원익은 그에게 자신의 손녀를 주어 손녀사위로 삼기도 했다.

이원익은 또한 임진왜란 당시의 장수들 중 이순신의 활약을 높이 평가했는데, 후일 그의 서녀를 통해 이순신과도 사돈간이 된다.

광해군이 즉위한 후, 이원익은 영의정에 발탁되었다. 그는 영의정으로 취임하자 대동법을 건의하여 전국적으로 실행했으며 불합리한 세제를 고치고 군사제도도 개혁해 나갔다. 개혁 성향이던 북인은 그의 견해를 적극 지지하였으며, 같은 계파에 속한 일부 남인은 북인 정권에서 재상을 지내는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임해군의 처형 당시 관용을 베풀 것을 주장했다가 북인들의 눈밖에 났으며, 영창대군을 모함하여 사형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1615년에는 이이첨 등에 의해 인목대비에 대한 폐모론이 나타나자, 폐모론을 극력 반대하다가 기자헌, 정구 등의 변호와 탄원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홍천에 유배되었으며, 1619년 풀려나왔다.

1623년 봄 서인의 주도로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이원익은 남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정부 영의정으로 등용되었으며, 서인-남인 연합정권을 구성했다. 그 결과 인조반정이 백성들과 사대부의 지지를 받지 못하던 인조반정에 대한 민심 수습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1624년(인조 1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공신 이괄의 난 때에 공주로 피란하는 왕을 모셨다. 그밖에도 광해군의 암살을 미리 예상하고 사람을 보내 광해군을 비밀리에 보호하게 하였다.


이원익 종택의 안뜰

대동법 시행으로 백성의 삶 안정

그러나 무엇보다, 정치가 혹은 행정가로서 이원익의 가장 큰 업적은 대동법의 시행이다.

그는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원익의 건의에 따라 광해군 때(1608년)에 경기도에서 시행된 대동법은 서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우선 관동지역까지 확대 시행(1658년)하고, 그 후 숙종 때(1708년)에 이르러 잠곡 김육의 건의로 전국에 시행하게 된다.

1623년(인조 1년) 1월 10일 인조는 승지 강홍중을 보내어 이원익을 문안한 뒤 “그가 사는 집이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강홍중은 “두 칸 초가가 겨우 무릎을 들일 수 있는데 낮고 좁아서 모양을 이루지 못하며 무너지고 허술하여 비바람을 가리지 못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재상이 된 지 40년인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니, 청렴하고 결백하며 가난에 만족하는 것은 고금에 없는 것이다. 내가 평생에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은 그 공로와 덕행뿐이 아니다. 이공(李公)의 청렴하고 간결함은 모든 관료가 스승삼아 본받을 바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5칸짜리 집 한 채를 이원익에게 하사했다.

하지만 이원익은 “신을 위해 집을 지으니, 이것도 백성의 원망을 받는 한 가지”라며 수차례에 걸쳐 받기를 사양했다고 한다.

오늘날 여러 분야의 공직자들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세태를 비추어볼 때, 수백 년 전의 이원익은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공직자의 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경기도 광명시의 오리 이원익 기념관은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은 유적지에 불과하지만, 그곳에 새겨진 이원익의 공직자 정신은 오늘도 찬란히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