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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를 통해서 본 인재들의 성공전략

자신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

사기를 통해서 본 인재들의 성공전략


4년 전 여름, 중국 시안에서 2시간 반쯤 거리에 있는 사마천의 고향 한청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엔 사마천의 사당이 있는데, 20m 이상 우뚝 솟은 사마천의 동상이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문 입구에 ‘사필소세(史筆昭世)’이란 글자가 보였습니다. ‘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라는 말인데요. 바로 역사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마천이 쓴 130편에 달하는 『사기』 52만 6,500자를 관통하는 단어로서 꽤 멋진 글씨였습니다. 99개의 돌계단을 올라 그의 무덤에 다가서니 다섯 그루의 측백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무덤은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김원중 교수(단국대)


사마천은 왜 이 이야기로 『사기』 「열전」을 시작했을까요? 자신의 삶을 백이와 숙제에게 투영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 사마천의 삶은 백이, 숙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사마천이 살았던 당시에 한무제는 대외 이민족들에게 강경 정책을 펴고 있었습니다. 마침 사마천의 친구인 이릉(李陵)이 1천 명의 군사를 이끌다가 수만 명의 흉노에게 포위되자 그만 투항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한무제는 죽을 각오로 싸우지 않고 투항해버린 이릉의 소식을 듣고서는 그의 어머니와 처자를 죽이라고 명합니다. 이때 사마천이 나서서 이릉을 변호했는데, 이것이 한무제의 역린(역린)을 건드린 겁니다. 결국 사마천을 궁형에 처하라고 명하지요. 궁형은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로 사형에 버금가는 극형이었어요. 수치심으로 치를 떨던 그는 죽음을 선택하려고도 했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이를 갈며 분을 삭입니다. 사마천은 『사기』 「열전」의 시작 부분에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 인사(人事)나 세사(世事)의 냉엄한 현실에 대해 한탄한 것입니다.
사마천의 푸념처럼 세상일이란 게 ‘인과응보(因果應報)’니 ‘권선징악(勸善懲惡)’이니 하는 말과 꼭 들어맞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청빈의 자세로 자신을 추스르면서 살다 요절한 안회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하늘의 도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옛말에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고 했습니다. 과연 하늘의 뜻은 늘 옳은 걸까요? 물론 이 질문은 백이와 숙제를 향한 것입니다. 하지만 궁형이라는 비극에 처했던 사마천 자신은 물론이고, 인간의 삶 전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마천이 『사기』를 통해 던지고 싶었던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마천은 이 질문에 “하늘의 뜻이 늘 옳지는 않다”라고 대답하는 것 같습니다. 『사기』 속 수많은 인물이 바르게, 옳게 살아갔지만, 시대의 빛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어찌 보면 오늘날 세상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마천은 고통 속에서 인간사의 본질을 보았습니다. 바르게 사는 것만이 잘사는 길은 아니라는 것, 하늘의 뜻은 인간의 뜻과 다르다는 것 말이죠. 이는 사마천의 시대에도,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의 기회로 인생을 바꾼 이사
이사(李斯)라는 인물은 『사기』 「이사열전(李斯列傳)」에 등장합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세 번의 기회로 인생을 확 바꾼 사람이지요. 이사는 초나라 상채(上蔡) 사람으로 젊은 시절 군에서 낮은 벼슬아치 노릇을 하며 살았습니다. 특별할 것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평범한 사람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사는 변소에서 쥐 두 마리를 발견합니다. 그 쥐는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 쓰레기를 먹다가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납니다. 얼마 뒤 곡식 창고에도 쥐가 나타났는데, 창고에 있는 쥐는 이사의 인기척에 놀라기는커녕 쌓아놓은 곡식을 평온하게 먹는 겁니다. 이사는 쥐 두 마리를 보면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렸을 뿐이구나.” 쥐나 사람이나 어떤 환경에 사느냐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낀 것이죠. 이사는 자신과 초나라의 운명을 생각합니다. 그는 강대국이었던 초나라가 약해지고 있음을, 그리고 이제 진나라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출세를 위해 새로운 모험을 하기로 다짐하고 초나라를 떠납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조국을 버리고 연고도 없는 진나라로 향합니다. 그는 진나라 승상 여불위를 찾아가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지요. 그리고 여불위의 추천을 받아 진시황을 만납니다. 이사는 다른 여섯 나라가 힘을 합치기 전에 그들의 의도를 분쇄해야 한다는 이간책을 주장했고, 결국, 진시황의 마음을 사 객경(客卿)이 됩니다. 당연히 반대파들의 저항이 있었겠지요? 자신들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객인 이사가 와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마음에 들 리가 없죠. 때마침 한나라 출신 객경이 알고 보니 첩자였던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계기로 축객 逐客, 즉 멀리서 오는 사람들을 내쫓으라는 여론이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이사는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는데, 그 유명한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진시황에게 올립니다.

옛날 목공은 인재를 구하여 융에서 유여를 데리고 왔고, 완에서 백리해를, 송에서 건숙을, 진에서 비표와 공손지를 데려왔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진나라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목공은 이들을 중용하여 스무 나라를 통합하고 서융에서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태산은 한 줌의 흙을 사양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조그만 흐름을 가리지 않는(泰山不讓土壤 河海不擇細流) 법입니다.
『사기』 「이사 열전」

출신에 따라 사람을 배척하지 말고, 능력 위주로 사람을 등용하기를 바라는 내용입니다. 이사의 논리 정연함에 진시황은 감복합니다. 편지 한 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이사는 진시황의 신뢰를 등에 업고 정위廷尉 자리까지 오릅니다. 군주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등극하게 됩니다.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릴 것
세상에 영원한 승리가 없듯이 오늘의 패배 역시 영원하지 않습니다. 긴 인생 살아가다 보면 즐거운 일이 있듯 슬픈 일도 있게 마련이고, 승승장구하다가도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실패했다고 하여 영원히 실패자로 남으리란 법도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사의 이야기처럼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니 때를 기다려 기회를 잡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아도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항우(項羽)처럼 단 한 번의 패배에 좌절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지만,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면서 때를 기다리다가 결국 자기 뜻을 이룬 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부차와 구천의 이야기로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부차와 구천 중 누가 더 강해 보입니까? 이 둘의 반복되는 싸움과 결과를 보노라면,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라는 말보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부차는 ‘와신’의 세월을 잊고 오자서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패망했지만, 구천은 몸을 낮추고 ‘상담’하며 범려의 말대로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믿음으로 신뢰를 구축하라
늘 낮은 자세로 상대를 대하며 자신의 입지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나락으로 떨어지곤 하지요. 처세에 능하다는 것은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 듯합니다.
중국을 통일한 한신 韓信이 그랬고, 작전 참모로서 훌륭한 역할을 한 장량(張良)도 끊임없이 견제를 받으며 자신의 위치를 고민했습니다. 제아무리 불후의 공적을 세웠다 하더라도 매사 전전긍긍하며 살얼음을 밟듯이(如履薄氷) 살아야 하는 것도 세상사인가 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승상(丞相)이라는 지위는 처신하기가 몹시 어려운 자리 중의 하나입니다. 권력자의 역린을 절대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조언하며 국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죠. 그 승상의 자리에서 한나라 개국이라는 큰 뜻을 이루었던 소하(蕭何)라는 인물을 통해 바르게 처세하는 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소하는 시대를 보는 예리한 눈을 가진 명석한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처세에도 능했지요. 그는 큰 뜻을 품어 결코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고 사람 관계가 그렇듯이 누군가의 신임을 잃기는 쉬워도 믿음을 오래 간직하기란 어렵습니다. 신뢰 관계를 유지하려면 몇 배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인생에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실패도 하고 치욕도 겪습니다. 어찌 보면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뒤치락하며 비슷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최후에 승리하는 자는 실패와 치욕의 순간을 끝까지 기억하고,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릴 줄 아는(韜光養晦) 자일 것입니다. 실패를 기억하고 이를 밑거름 삼아 긴 인생길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최후의 승자가 되길 바랍니다. 결국 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란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행복할까요? 『사기』에는 시대를 비껴간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에 맞선 자까지 다양한 인생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2천여 년 전 한 시대를 아울렀던 그 인물들을 살펴보노라면 그들도 지금 우리처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갈등과 선택을 반복했던 보통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학의 교과서’라 불리는 『사기』는 인간 본성을 깨닫게 하고 사람을 배워 세상 이치를 꿰뚫어 각자의 인생에서 승자가 될 수 있을 길을 안내합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 관계의 지혜를 배우고, 자신의 삶을 투영해봄으로써 더 나은 사람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현답도 얻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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