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게 갠 하늘과 뜨거운 햇빛이 우리의 눈을 간지럽혔다. 농장 봉사 활동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KOICA 해외 봉사 단원으로서 으부꾸이 농장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박준우 단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우리는 우선 으부꾸이 농장의 간략한 역사와 현황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농업 국가이자, 농민의 절대 다수가 영세농인 파라과이는 농민의 소득 보전이 국가 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과 체계적이지 못한 지원, 부족한 교육 때문에 한때 KOICA 으부꾸이 농장은 폐쇄될 위험에 처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KOICA가 지원사업을 마무리하고 농장에 관한 권리를 파라과이에 양도했으나, 현지에서는 자체적으로 농장을 경영해 나갈 자금이나 노하우 부족한 탓이었다. 다시 KOICA가 으부꾸이 농장을 관리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예전에 있던 농가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난 후였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회원국인 우리나라가 무상원조에 있어서 단기 투입뿐만 아니라 장기 관리가 가능한 원조에 힘써야만 하는 이유를 배울 수 있었다.

다행히 지금의 으부꾸이 농장은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파라과이 농축부의 지원도 다시 시작되었고, 농장에 관심을 갖는 일반 기업들의 참여를 장려하여 농민들에게는 재배할 작물과 선진 기술을, 기업들에게는 생산물을 돌려주는 선순환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KOPIA에서 시도하는 농가 소득증진을 위한 작물 시범 재배 사업도 활발히 펼쳐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 시범 재배 사업의 일부분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의 임무는 한국의 참외 씨를 파종하는 일이었다. 첫 단계는 소거름과 일반 흙을 골고루 섞어 부드러운 흙으로 솎아내는 작업과 비닐모종포트에 흙을 담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라면 기계를 써서 단숨에 해냈을 일을 현지 농민들이 하는 방식대로 직접 손으로 하다 보니 처음엔 단순해 보였던 일도 쉽지 않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거침없이 내리쬐는 햇볕으로 비닐하우스 안은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묵묵히 삽질을 하고, 흙을 나르고, 여기저기 둘러 앉아 비닐모종포트에 흙을 담았다.

흙이 담긴 비닐모종포트가 어느 정도 모이자, 포트들을 작업대로 올려 나열하고, 물을 뿌리고, 마침내 한국 참외 씨를 하나하나 심는 작업을 동시에 시작했다. 씨앗을 잘 눌러 담고, 흙으로 덮고, 다시 물을 주는 작업이 이어지다보니 어느덧 마무리 시간이 되었다. 박준우 단원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내내 작업대 위에 놓인 파종 포트에 눈이 갔다. “참외가 맛있게 열리면 농민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어떤 맛인지 알려드릴게요!” 지금 겨울이 다가오는 한국에서, 우리는 파라과이에서 열릴 맛있는 여름 참외를 떠올리는 유쾌한 상상을 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한국에서 꽤 먼 나라이다. 비행기 직항도 없고 거리도 8,00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다 심리적으로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생소한 나라였다. 그러나 모든 낯설음은 주 노르웨이 대사를 만난 후 노르웨이의 양성평등정책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처음 방문한 공식기관은 오슬로 대학 산하 「양성평등연구센터」였다. 이 센터는 설립된 지 약 2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현재 유럽지역의 양성평등 연구 허브로서 유럽뿐만 아닌 세계 곳곳에서 온 연구원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수석 연구원의 간단한 센터 설명 후 센터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EU에서 남부유럽의 저출산 문제를 분석하는 EU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듣게 되었고, 한국적으로 변용할 수 있는 길도 모색해 볼 수 있는 계기였다.

 

다음으로 방문한 기관은 「Ruseloekka 유치원」이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보육시설이었는데, 아이들의 창의성과 독립심을 길러주는 교육을 추구한다는 원장님의 교육철학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와 달리 남자 유치원선생님이 많다는 점이었다. 영유아 대상 공교육에서 남성의 참여가 활발하다는 것은 노르웨이의 교육과 고용에서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이기도 했다. 또한, 사립시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예산에서 국가보조금의 비중이 60% 이상이라고 하였다. 이는 정책적으로 정부가 보육에 대해 많은 부분 관심을 갖고 책임을 진다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노르웨이 중앙 정부 부처인 아동성평등부의 산하기관이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평등반차별 옴부드」를 방문하였다. 이곳은 평등에 반하는 개별 사례들에 대해 조언 및 도움을 주며, 평등에 반하는 법과 제도에 대한 권고를 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출산으로 인하여 직장에서 해고당한 여성의 고충을 해결한 사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노르웨이 사회의 양성평등을 증진하는데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일하는 옴부드 관계자들의 모습은 우리 신임공직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관 방문 전에는 노르웨이는 여성과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양성평등 정책과 보육의 사회화를 통해 남성, 나아가 사회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노력이 감동적이었다. 우리나라도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은 더 좋은 사회로 하루 빨리 변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