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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디작은 미물에게서 국내 유전학의 기틀을 발견하다

NHI Column · 장소탐방

작디작은 미물에게서
국내 유전학의 기틀을 발견하다

- 세계가 주목한 초파리 박사, 이택준(李澤俊) -
이택준 교수가 발표한 초파리 신종은 무려 17개에 달한다 / ⓒPixabay
과일의 농익은 향기에 가장 먼저 몰려드는 초파리는 참으로 성가시기 그지없는 존재다.
그런데 대체로 하찮게 취급하기 마련인 이 미물을 통해 국내 유전학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 있다.
‘초파리 박사’라는 별명으로 익히 알려진 이택준(李澤俊, 1928~2001)이다.
40여 년의 연구 외길을 걸어온 그가 직접 이름 짓고 생물학계에 발표한 신종은 무려 17개로,
국제무대에서도 가히 독보적 성과다.
보름이면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2~3mm 크기의 곤충에 주목한 ‘초파리 박사’
동료 교수들과 함께(맨 왼쪽이 이택준 박사) / ⓒ김준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무시무시한 북한 남파 간첩이 숨어들었다는 소식조차 굳은 의지를 꺾지 못했다. 주말이면 설악산, 한라산, 계룡산 등 이름난 산야는 물론 비무장지대까지 찾아다녔다는 이택준은 밤새 총격전이 난무해도 오로지 초파리 채집에만 골몰이었다. 그 덕분일까. 당시 찾아낸 표본 하나는 훗날 신종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뤄낸다.

1928년 충북 진천에서 출생한 그는 말 그대로 촉망받는 인재였다. 1952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나라 안이 온통 뒤숭숭했으나 무사히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해 곧바로 마산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어 3년 뒤 공주사범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기 시작해, 1961년 중앙대학교 강단에 섰다. 또, 1966년 일본 홋카이도 대학(北海道大學)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으며 학문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단순 초파리 연구를 벗어나 생물 진화를 설명하는 단초 제공
이택준 박사의 저서와 논문 / ⓒ중앙대학교 출판부
평생 벗으로 삼은 초파리와 인연이 닿은 건 1956년의 일이다. 신맛을 좋아해서 이름에 초(醋) 자가 붙은 이 생명체는 세계적으로 1,050여 종에 다다른다. 일반 파리보다 현저히 작은 2~3mm의 크기로, 좁은 공간에서 너끈히 기를 수 있으며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기간이 보름에 불과하다. 따라서 형태, 지리, 발생 등 통합적 진화 연구를 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해외 학계에서 1930년대부터 유전학 재료로 널리 활용해온 이유다.

이 같은 사실에 큰 관심을 가진 이 박사는 뒤처진 한국의 유전학 발전을 위해 초파리 연구에 매달렸고, 17개의 신종 발견과 국내 115종 분류·체계화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더불어 원시종과 파생종을 명확히 밝혀 유전학계에서 권위 있는 저술로 손꼽히는 <초파리의 진화>에 담아냈다. 그 밖에 <유전학>, <세포학>, <일반생물학> 등의 저서와 논문 <초파리의 집단유전학적 연구>을 선보였으며, 단순 초파리 연구를 벗어나 생물 진화를 설명하는 단초를 제공해 높이 평가 받았다.
굽은 등으로 현미경 벗 삼아 자연의 신비 밝혀내는 데 앞장서
크기가 2~3mm에 불과한 초파리는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기간이 보름이다 / ⓒPixabay
‘내 인생에서 사람 말고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건 초파리였다’고 밝힌 이택준은 소위 초파리 박사로 통했다. 그 별명처럼 초파리가 있는 곳이라면 우거지고 험난한 숲이나 들을 마다치 않고 채집에 나섰으며, 등은 현미경을 들여다보느라 늘 구부정해 있었다고.

웬만한 일에는 큰 내색을 하지 않는 성품이었으나 광릉에서 잡아 온 표본을 놓쳤을 땐 천금을 잃은 듯 아까워했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전해지는 일화다. 실수로 제주도에서 얻은 초파리 개체를 훼손해 큰 꾸중을 들었다는 제자(김남우 대구한의대학교 한방산업대학 힐링산업학부 한약개발학전공 교수)는‘표본을 다룰 땐 온 정신을 쏟으라’던 가르침을 여태껏 잊지 못한다고 회상한다. 이 박사를 지도한 스승의 기억 속에서도 열정으로 가득하던 모습이 선연히 빛나기는 매한가지다.
초파리가 있을 법한 곳에서는 발걸음부터 경쾌해졌습니다. 포충망을 가볍게 휘둘러 잡은 초파리를 허리춤에 차고 있던 병 속에 집어넣는 모습이 그렇게 신명 나 보일 수 없었죠. 그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았어요. 말없이 자연에 몰두하면서 초파리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습니다.

- 김준민(金遵敏)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중앙일보「국내 유전학 초석 다진 '초파리 박사'」中
1985년 수상한 국민훈장 모란장 / ⓒ국가보훈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디작은 곤충에게서 자연의 신비를 발견해내 우리나라 유전학의 위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이택준. 그의 노고에 보답하듯 초파리를 통한 연구는 국민훈장 모란장(1985)과 서울특별시문화상(생명과학 부문, 1993)의 영예를 안겨줬다. 마지막 순간까지 현미경 곁에 있길 원했던 초파리 박사는 아쉽게도 지난 2001년 3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유전학계에 남긴 큰 발자취는 변치 않은 영향력으로 후학의 마음에 남아 길이길이 이어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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